한국 역사정보통합시스템 홈페이지의 자료를 찾아보니 이만 방조가 판중(判中)을 역임한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.(마침 얼마전에 제가 문헌사적인물 코너에 옮겨다 놓았습니다.) 그런데 판중이란 벼슬은 판중추원사(判中樞院事:판중추부사 종일품)의 약칭으로 생각됩니다만.
그러나 조선 초기의 인물로 왕조실록의 태조 정종 태종편을 찾았으나 애석히도 그분에 관한 기사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. 실제 묘지도 그동안 실전되었다가 최근에 비로소 찾아냈는데 상석에 봉렬대부 호분위경력 우계이공 휘만지묘(奉列大夫 虎賁衛經歷 羽溪李公 諱蔓之墓)라 적혀 있었습니다.
그런데 역사정보통합시스템에 있는 우계이씨 계보에 만의 12대손이자 정관(正觀)의 손자인 종일(種一)까지 나와 있었으므로(정관의 두 아우인 석관(碩觀)과 홍관(弘觀)의 손자들은 아직 족보에 나타나지 않은 것으로 보아 대략 숙종 말기로 생각됨) 대략 18세기 후반에 나온 것으로 보이며, 이 판중추부사 벼슬은 사후 추증된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됩니다.
다소 만족스럽지 못한 답변을 드려 송구스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. 그럼 부디 좋은 하루 되시기를...
........................................................................................ ■ 염태호: 이석 님 수고하셨습니다. 이만 선조님의 한국역사정보 자료를 알려주시어 감사합니다. 종중마다 이런 문제들이 있을 수 있다는 점에서, 앞으로도 문중자료와 역사자료의 재검토가 활발히 이루어저야 하겠습니다. 염태호 올림 (yumth@unitel.co.kr) -[08/14-09:20]-